셋째날 쯤 되니 버스기다리는 모습이 서울시민 포스. 우리 고객님들 적응이 빠르다. 서울타워에 오르기 위해서는 등산로를 걷는 방법과 순환버스를 이용하거나 남산근처에서 케이블카를 타야한다. 그러나 오늘은 추석.
며눌여행사는 계산했다. 작년 추석 당일 서울타워를 방문한 블로그를 검색했더니 대기시간 1시간 40분!!!!???? 올해라고 다르겠나. 자, 그럼 버스인데. 택시를 타고 장충동까지 가서 버스를 탈까 하다가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오히려 제일 먼 명동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명동-충무로-장충동-남산-타워-장충동-명동 이런식으로 순환하기 때문에 명동엔 타려는 사람도 있지만 내리려는 사람도 많을 것!!! 오 마이갓 이런 지니어스를 봤나.
드디어 05번 투어 버스가 왔다. 아...아... 근데 나 지금 출근해? 이 인파는... 덜덜덜.. 내가 낑겨타는 것도 싫었지만 일본에서 오냐오냐 생활한 시고객님들이 더 걱정됬다. 평소에 대중교통도 잘 이용안하시는, 해 봤자 텅텅빈 차량에 몸 흔들흔들 하면서 타시던 분들인데..
그런데 대 반전. 미어터진 버스를 보며 굳어버린 건 나 혼자였다. 케군은 "어서! 이거 꼭 타야 돼! 밀어밀어!" 이람서 내 손목을 질질 끌고 어머님은 오오!!! 사람 좀 봐!!! (어머니.. 지금 얼굴이 웃고있는데요?) 남편 버스에 밀어넣고 아들부부 밀어넣으려고 궁둥이로 공간확보하시더니 우악스럽게 내 등을 꾸역꾸역 미시면서 애들챙기셨다. 헉! 이 아줌마는 누규!!
버스를 무사히 타고 나란히 서서 얼굴을 마주하고서야 헤헤헤. 이래봬도 아줌마아니겠냐며. 평소 어머님의 상냥한 눈웃음을 지으셨다. 오오..!!!!!!!!! 믿음직해요!!!!!여자는 일본인은 나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
갑자기.. 어디가서 아무말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거 아닐까... 이 일본인들 무리를 내가 책임져야 해... 잘 챙겨야 해... 했던 무거운 부담감들이 훅!!! 하고 날라가는 듯 했다. 정말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나야말로 쓸데없는데에 기를 쓰고 덤비지말고.. 넘어갈땐 넘어가고 알면서도 속는 척 그러려니 모르는 척 그러다가 정말 필요할때 강해지는, 꼭 필요할때 힘을 쓰는 이 분들한테 많이 배워야한다.
버스에서 내려, 끙끙 타워까지 올라가는데 정말 며눌여행사 최대 위기였다!!! 길은 막히지 6시는 넘어가고 있지. 레스토랑 예약은 20분 넘기면 자동 취소된다하지. 고객들은 이미 전속력으로 향해주고 있고 쉣줄이 타들어갔다. 이 많은 사람들... 아아.. 고층엘리베이터 기다려야하면 게임아웃인데 메인이벤트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거 같아.. 어떡해 ;A;
그런데 나에게 광명이 비췄다. 주말이나 사람이 많은 날 서울타워에 간다면 레스토랑 예약을!!!
입구쪽 지하로 내려가서 인포메이션으로 뛰어 가 리스트에 예약자 이름만 확인해 주면 엘리베이터 직원이 우릴 맨 앞으로 안내해준다. (엘리베이터가 성수기에는 1시간도 기다리는데.) 타워 입구에서 1분도 채 안 된 시간에 우린
타워를 따라 솟아오르는 엘리베이터 안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며눌여행사 사활을 건 이벤트였는데 망칠 뻔..
한쿡에 들어서자, 바깥의 개미떼 같은 광경과는 정반대로 조용하고 한가로운 분위기였다. 추석 때 평소 하기힘든 진수성찬이 집안에 터질 거 같은데 일부러 한식을 사 먹으러 (그것도 뷔페) 나오진 않았던 것이다. 며눌여행사 이 지니어스쟁이. 정말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서울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깔끔한 한식을 (모듬전, 잡채에 순대, 죽, 잔치국수까지 종류별로 있었다.) 입맛대로 먹었다.
나는 여기서 추석음식 다 챙겨먹으며 기분냈고 어머님은 드디어 죽, 미역국을 드시며 편안하게 속을 푸셨다. 아버님? 아버님은 술로 술을 푸시며 술을 안주 삼아 술을 드셨다.
천천히 아버님이 좋아하는 경치도 내려다 보며 도란도란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듣게 되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케군이 우리엄마가 건강할 때 같이 왔던 게 서울타워라서 꼭 오고 싶었다고. 케군이랑 웃고 말하고 눈을 마주치던 엄마는 단 한번뿐이라 케군의 기억에도 희미할텐데 그런 엄마를 한 번도 못 본 시부모님은 이쁘게 키운 딸 시집오게 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할 수가 없어서 안타까우시단다. 그래서 엄마가 지나간 자리에 엄마의 영혼이라도 깃든 듯 똑같이 여기 오셨다.
고맙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제가 다 이 마음 갚을 수 있을 지 모르겠어요. 뜨거운게 치밀어 올라서 몇 번이나 밥 숟가락을 입에 밀어 넣었는지. 밥이 목에 넘어 갈 때마다 꾸역-하는 소리를 냈다.
나중에 안 사실하나는 사십구제하는 절에 엄마 유골을 뿌려드릴 때 어머님은 엄마가 잠 든 근처 돌을 소중히 줏어오셔서 가방에 넣고 서울타워에 같이 데리고 오셨었다. 거기에 엄마 있는 것 처럼 다 같이 온 것처럼.
엄마까지 포함해 우리 가족 모두에게 뜻 깊은 밤이 깊어갔다.
밥 먹고 전망대에 올랐다. 아버님은 360도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으셨고 ㅎㅎ
어머니랑 나는 또 극도의 집중력으로 사입하러 다니느라 정신없었다. ㅎㅎ "가만있어보자... 이거 괜찮은데..? "
인생은 떠나보내며 사랑을 확인하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소중함을 나누고 앞으로 만날 수 많은 인연들을 행복하게 기다릴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나이들면서 항상 전보다 더 큰 슬픔, 더 큰 시련이 닥쳐왔지만 반대로 어릴 때는 알 수 없었던, 새롭게 경험하는 감동과 행복도 해를 거듭하며 커지는 것 같다.
내 생애 가장 슬픈 여름은 내 생애 가장 감사하고 행복한 한 해 속을 유유히 지나가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