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대리는 365일 중 360일 술을 마셨다.
먼 친척이며 지인들까지 다 아는 독신주의자였다. 어느날 몽구에게 전화가 왔다.
"형, 진짜 이쁜 애 있는데 소개 한 번 받아. 미국에서 온 지 얼마 안됐어. 열X 이뻐."
"나 혼자 살건데? 여자 필요없어."
" 아 - 아까워서 그래."
이렇게 소개팅을 거절하고 몇 달이 흘렀다.
어느 여름날 용대리는 쓰레빠에 반팔 티 반바지 차림으로 콩팔이가 부르는 파스타집으로 나왔다. 우적우적 파스타를 먹고 있는 콩팔이 옆에 몽구도 있었는데, 여자 후배인 슈가가 또 온다했고,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용대리는 술이나 한 잔 하러 가자고 했다. 그랬더니 몽구가 한 명 더 온다더니 다름아닌 몇 달 전 소개팅 상대였던 포도씨가 나타난 것이다.
후배들은 진작에 짝짝꿍이 되어 용대리와 포도씨의 소개팅을 주선 했고 예쁘게 잘 차려입은 포도씨완 딴판으로 용대리 꼴은 말이 아니었던 지라 용대리의 기분은 단박에 똥이 되었다. 확실히 포도씨는 미인이었지만 용대리는 누가 봐도 미인인 여자보다 보면 볼 수록 매력있는 여자를 좋아하는 독신주의에 기분 똥인 남자였다.
그래서 술 자리 내내 에라이~ -심정으로 " 야 저 옆에 여자 봐. 몸매 죽이지 않냐? 여자는 말야~" 이런 말들을 하며 떡이 되게 마셨고 동네 후배들을 죄다 차로 데려다 줬다. 여자 몸매 얘기 해. 술을 개떡으로 마셔, 거기다 음주운전까지 포도씨에게 용대리의 첫인상은 쓰레기였다. 별 대꾸도 해 주기 싫었다.
그 날 이후 용대리와 포도씨는 서로의 머릿속에서 삭제 됬는데. 의외로 평소 잘 알던 슈가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포도씨와도 친구였던 슈가는 "너 용대리 오빠 흥미 없으면 내가 연락해도 돼?" 했던 것.
그리고 딱 일주일이 흘렀다. 몽구의 생일파티가 있었다. 용대리도 룰루랄라 참석한 파티에 포도씨도 있었다. 사람들이 인사불성 취해 있는데 그날 따라 용대리는 그다지 술을 마시지 않았고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못 대는 포도씨와 유일하게 제대로 된 대화 상대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노래방엘 갔는데 '지가 이쁜 줄 알고' 뭘 물어도 다 씹고 도도한 척 앉아 있던 (거라고 생각했던) 포도씨가 잘 부르지도 못하는 댄스 곡을 율동까지 하면서 까불까불 부르더란다. 노래 못하는 여자가 이상형이던 용대리는 그날의 포도씨가 너무 귀여워서, 너무너무 귀여워서. 정말 손으로 싸서 집에 가져 가고 싶었다.
용대리는 몽구에게 가서 다짜고짜 "포도씨 전화번호 내 놔." 했다. 몽구는 놀란 눈을 하고 " 형, 슈가가 형 좋아하는데 어떻게 그래요." 했고 그제서야 용대리는 슈가의 마음을 알게 됐고 너무너무너무너무 놀래서 이렇게 말했다.
"시끄럽고, 포도 전화번호 빨리 내 놔."
다음 날 부터 포도씨에게 용대리의 전화가 빗발쳤다. 용대리는 허구헌날 밥먹자고 했다. 매일매일 만나자고 했다. 하루종일 문자를 했다. 휴일에도 평일에도 데이트신청을 했다.
몽구에게 문자가 왔다.
"형.. 작작 좀 해..."
헉!
용대리는 이러다가 튕겨져 나가겠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천~천히. 시간을 끌면서 조심스럽게 살살 무척 소중하게 포도씨를 만났다. 두 달째 조심조심 공을 들이고 있던 중 포도씨는 집 앞 공원에서 용대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뭐 하자는거에요 오빠?"
용대리는 너무 시간 끌다가 결국 포도씨에게 사귀자는 말을 들어야 했다.. 크읏.. 용대리는 지금 생각해도 그게 가장 미안하다고 했다. 이렇게 용대리와 포도씨의 커플은 탄생했다.
둘의 교제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자라 온 환경이 비슷하면서도 달랐고 취향도 뭐도 전부 난관이었다. 포도씨와 용대리의 부친이 기계 관련 된 중소기업 경영을 하시긴 하셨지만 용대리네는 어음이 돌았고 포도씨네는 현금이 도는 집안이라 씀씀이가 달랐다.
유니끌로 밖에 모르는 용대리가 아무렇지 않게 80만원짜리 츄리닝 원피스를 사는 포도씨를 보고 놀랐다. '뭐지.. 얘 된장녀인가..' 당황스러웠다. 맛있는게 아니면 소화가 불가능했던 포도씨는 늘 페밀리 레스토랑 외식이 주식이었고 용대리의 월급은 매달 모잘랐다.
평생 벌어 번 돈이 85만원이 전부였던 포도씨에게 용대리는 말했다.
"돈 버는거 되게... 힘들다...?"
미술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 온 포도씨에게 자주성을 찾아보길 권한 용대리 덕분에 포도씨는 취직을 하게 되었다. 어린아이들과 즐겁게 미술놀이를 하는 체험 미술 아카데미였는데 정신도 육체도 고단했지만 월급은 정말 쥐꼬리 만했다. 그래도 처음으로 느낀 일에 대한 자부심으로 포도씨는 2년을 근무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용대리는 워낙 술을 좋아해서 포도씨에게 레몬소주나 샴페인부터 먹여보려 했다. 그러나 결국 포도씨의 주량을 늘리지 못하고 술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취향 쪽도 문제였다. 용대리의 어떤 이벤트도 포도씨는 어어... 너무 고마워.. -하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더란다. 뭘 해줘도 그냥 그랬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 보라고 용대리는 포도씨를 졸랐다. 무슨 선물을 해도 어딜 데려가도 어찌나 센스없고 촌스러웠던지 한참 쌓여있던 포도씨는 결국 터뜨리고 말았다.
"오빠. ㅠㅠ 이거 솔찌키 졸라 븅신 같거든? ㅠㅠ
(솔직하게 말하고 미안해서 오열)
그 일 이후로 뭘 사거나 돈을 쓸 때는 전부 포도씨의 안목에 맡기기로 했다. 그러고나니 용대리도 한결 편해졌다.
만나고 3개월 된 어느날이었다. 포도씨가 말 했다.
" 오빠. 엄마 친구네 집에 김장해서 먹을 게 많대. 먹으러 갈래?"
"그래.가자!"
먹을게 많은 엄마 친구 집에 가게 되었다. 신나게 TV를 보며 놀고 있는데 엄마랑 엄마 친구 다른 친구분들이 우루루 계신 자리에 갑자기 포도씨의 아버지가 오신다는 거였다. 용대리의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아버지가 나타났다. 한 순간에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자리를 피하고 용대리와 아버지가 맞대면 구도가 되었다.
정말 어려운 질문이 줄줄 이어졌다. 부모님이 뭐하시는지, 무슨일을 하는지.. 그러더니, 난 내 딸을 믿으니 내 딸이 좋아하는 남자면 누가 됐든 다~ 좋네. 라고 말씀하셨다. 용대리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날 밤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가 느닷없이 말씀 하셨다.
" 언제 한번 뵙자고 해라. 날 잡아."
네?? 그리고 일주일 후 양가 부모님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게 보통 상견례라고 하는 자리였다.
그날 두 아버님은 소주를 6병 비웠다. 같은 기계 사업에 골프가 취미시고, 포도씨네 엄마와 용대리의 아빠가 동갑. 용대리의 엄마와 포도씨네 아빠가 동갑이었다. 차종까지 같았다. 마치 에X스 동호회 분위기였다. 이렇게 첫 단추를 끼우고 약 9개월 후 포도씨와 용대리는 웨딩마치를 울렸다.
용대리와 꼭 닮은 공주님이 태어났다. 키도 발도 손도 크고 오직 작은 게 있다면 눈이었다. 말장난을 좋아하던 용대리는 포도씨의 취향에 맞춰 바지를 가슴께까지 올리고 몸개그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술도 담배도 커피도 안마시는 용대리가 받는 용돈 15만원은 가끔 포도씨가 먹고 싶은 걸 사주는데 쓰고 있다. "오빠가 뭐 사갈까? 뭐 먹고 싶어?" 하고 물으면 외식이 주식이던 포도씨는 "오빠 그냥 와. 집에 밥 있어." 라고 말한다. 그리고 포도씨는 친구들에게 결혼하고 나서 오빠가 더 븅신같애 져서 너무 좋다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고 한다.
이세상
어떤 결혼도 모두 기적
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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