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보다 하루 먼저 도착한 케서방의 소원으로 서울타워에서 야경을 만끽했다. 마치 마지막으로 자신의 뱃 속에 서울을 담으려는 듯 턱 아래 펼쳐진 불빛들을 먹어치우고 한 방울도 남김없이 한강을 흡입했다.
한국음식만 먹고는 살 수가 없다고. 한국에서 꽤 맛있는 양식까지 섭렵한 케서방이다. 다음날 아&점으로 청계천 마마스카페의 리코타치즈 샐러드와 토마토 모짜렐라 파니니를 소개 해주었다.
더럽게 눈만 높아진 케서방이지만 마마스 카페의 핸드메이드 리코타 치즈는 매력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파니니는 눈이 뒤집혀서 먹었기 때문에 사진조차 남아있지 않다.
자- 드디어 부모님과 큰아버님, 그 밖의 어머님 친구분들이 다수. 동생부부. 어머님 친구분의 따님이 인천에 상륙해서 롯데로 진입하셨다. 우리 팬더아버님은 명동거리의 활기넘치는 모습에 싱글벙글. 길가의 피어난 이름모를 풀 한포기까지 사진을 찍으셨다.
막 말 문을 튼 세 살 아이와 같은 아버님 이외 10여분과 밥 먹으러 장수갈비로 이동하는 동안에 이건 뭔지. 저건 뭔지. 궁금하신 게 많으셨고 나는 아는 게 없으므로 대충 그때 그때 지어내서 대답해 드렸다. 나중에 틀린 걸 들키면 저도 지금 알았는데 어머님은 정말 대단하시다며 알랑방구를 뀌었다.
금새 여러분들은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쳤다. 케서방은 누구보다도 많은 뼈를 뜯었다. 저 뼛 속에 녹아있는 진국을 자기만 쪽쪽 빨아먹고 아무한테도 권하지 않았다.
늦게 일어나서 아침을 못먹고 나와 케서방은 기분이 별로였다.
나는 이것저것 먹여보려 했지만 케서방은 거부했다. 짭짤한 소금끼가 있는 음식이나,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했다. 아버님은 옆에서 보고있다가 그럼 소금이나 사 먹으라고 날 도왔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경복궁 근처에서 박물관도 둘러보고 홍제동으로 이동했다.
이 날 저녁은 시부모님과 케군의 외가쪽 가족분들에게 한정식을 대접해 드렸다. 너무 배고픈데 쇼핑하느라 외삼촌가족들이 늦게와서 아사할 뻔했지만 어머님이 갱년기여서 에어컨을 18도로 틀어놓은 덕분에 너무 추워서 죽을 수 없었다.
신기하시다며 돌돌말은 물수건 하나로 1시간 이야기했다.참으로 편했다.
한살배기 조카도 여권을 만들어서 왔다. 밥먹기 시작할 때를 맞추어 울기 시작하더니
내가 안으니까 울음을 딱 그쳐서 난 조금 불행했다.
비주얼도 아름다운 석파랑의 야경이 한국 며느리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마지막 날은 스쿨푸드의 떡볶이를 먹여주고 시작했다. 그리고 종로구청에서 한국에서의 혼인신고를 마쳤다. 구청에 신고하는 건 로맨틱하려면 최면이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살던 곳에 가서 메텔과 메텔 어머님랑 소고기를 구었다. 그냥 난 기분이 너무 좋아 웃으면서 이야기했는데 이게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차이일까.. 호텔에 돌아와서 울면서 걸려 온 메텔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끊고 울컥 눈물이 났다. 같이 스크럽스랑 커뮤니티를 보면서 침튀기며 웃던 사소한 것들이 생각나니 그랬다... 슬픈 이 기분을 오래오래 간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크라제 버거의 아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공항으로 이동.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약 3년만에 나란히 비행기에 동석했다. 너무 설레는 일이었다. 우리 이제 비행기 탈 때 항상 같이 가는 거 너무 좋다.
소에다씨의 꽃 선물. 체류하는 내내 너무 싱싱해서 호텔에 두고오기 너무 아쉬었다.
미우라씨들의 잠옷세트.
시소의 찻 잔세트.
결혼식장이었던 한국의 집의 기러기세트
효도상 부부의 타마고사브로의 코케시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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