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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살이 나

2013-03-26 이쿠미의 결혼

by Previous Dong히 2024. 11. 26.

몇 년전 이쿠짱이 한국에 놀러왔을 땐  결혼하지 않아도 특별히 다를 것 없는 동거생활이 매우 고민이라고 그랬었다. 안정 된 부모님을 보고 자라며 현모양처를 꿈꾸던 이쿠에게는 이미 몸과 마음의 준비를 끝낸 상태였는데 결정적인 상대의 반응을 읽을 수가 없던 시기였더랬다.

그랬던 그녀가 지난 토요일 4년 연애의 막을 내리고 부부가 되었다.
하라주쿠와 오모테산도 사이, 캣스트릿에서의 오샤레한 웨딩이었다.

 

이쿠가 기획한 순서 중에 신랑 지인들 4명과 신부 지인들 4명을 불러서 서로에 대해 (각자의 손님들에게) 이야기 해 주는 시간을 가졌다. 부끄럽게도 내가 부탁받았다. 난 벌벌 떨며 일본어로 이쿠에 대해 말했다. 
"이쿠는요. 고집은 있어도 편견이 없는 아이예요. 제가 좀 다른 이야기를 하면 한국인은 그래? 가 아니라 동짱은 그래?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한 번도 절 외국인으로 대해 준 적이 없어요. 전 그게 정말 기뻤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이쿠가 콧잔등을 붉히면서 눈물을 왈칵 할 뻔해 큰일 났다 싶었지만 서로 잘 참아냈다. 식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구. 
 

독일어과 친구들. 참고로 모두 동창임. 신랑 부모님이랑 신부 부모님이 인사 오실 때마다 너무 어려워하셔서 쟤가 우리 동창임을 재차 재차 말씀드려야 했다. 

각자 이름이 적힌 지정석에 앉았더니 이쿠가 하나 하나 손으로 쓴 메세지 카드가 적혀있었다. 난 일본 결혼식 처음 와서 이런거 몰랐잖니.. 느닷없이 그런 세심한 배려를 맞이하는 바람에 눈물이 핑 돌았다. 너무 가슴 따뜻해 지는 순간이었다.

 

일본은 주례사의 설교없는 결혼이라 좋네-하고 생각했더니 밥 먹기 전에 스피치가 계속 됐다. 신랑 회사분, 신부 지인. 아버지 친구 등등. 

 

이쿠가 프로듀싱한 메뉴 및 순서책자도 너무 귀엽고 (신부가 할 일 대박 많네. 머리 터졌겠다.)

신부는 남동생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인사를 올렸다. 여기까지가 1부였다.

신랑은 형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인사를 올렸다. 형이 너무 키크고 잘생겨서 다들 새로운 충격에 빠졌 .. ㅎ 부축하는 거 아니고 에스코트하는 거임. 

 

그리고 신랑 신부가 다른 분위기로 다시 등장했다. 이쿠는 웨딩드레스는 그대로 입고 헤어스타일을 바꿨다! 이쿠는 2년 전부터 결혼식 2부를 준비한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이쿠> 나는 이제 몸과 마음의 준비가 다 끝났어. 결혼만 하면 돼.
나> 니가 무슨 준빌 끝냈는데? 
이쿠> 이제 머리 다 길렀거든. 
저 머리가 하고 싶었구나 ㅎㅎㅎㅎ 결혼을 준비하는 모든 여성분들. 혹시 제일 오래 걸리는 결혼준비.. 잊으신 건 아닌지요?

요리사 분들이 스테이크를 구워주... 

와.. 결혼식이 아니라 디너쇼 온 줄.

신랑신부가 정성스레 한 분 한 분께 나눠드렸다. (신기해...)

 

녹았다 녹았다. 녹아 읎어졌다.
대학동기들이 하나같이 정말 좋은 결혼식이라며 이야기했고 다들 정말 좋은 고기라고 알아들었다.
 

모두 디저트에 빵 (을 몇번을 리필해 먹었는지.)에 와인, 샴펜을 너무 맛있게 먹었다.

 

식장에 도착해서 축의금 전할때 나뭇잎사귀 같은 종이에 이름을 적어달라고 하더니, 신랑 신부는 저걸 예쁜 액자에 넣어 모두에게 보여줬다. 이쿠답구나. 결혼식에 온 사람들 다 기억하고 소중하게 간직하겠다고 그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쿠가 부모님께 편지를 읽어드렸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는게 보는 사람들이 더 죽을 거 같애서 우린 막 울었다. 어머님의 얼굴은 일그러뜨리며 계속 눈물을 훔치셨지만 입이 줄곧 웃고 계셔서 너무 행복해 보이셨다. 히로랑 이쿠는 이쿠의 생일날 프로포즈를 했던 여행지와 똑같은 티켓을 부모님께 선물로 드렸다. "저희의 뜻깊은 장소가 가족 모두의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신랑신부는 아무것도 못 먹은 테이블.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우리 테이블

 

한 사람 한 사람 배웅해 주시는 양가 부모님께서 내 스피치가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감사해 하셨다. 난 이쿠의 손을 잡고 주책스럽게 눈물을 줄줄 흘렸다. 집에 가는 마당에 내가 우니까, 이쿠가 민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ㅋ 근데 이쿠야 너도 히로랑 내 결혼식에 와서 난 가만있는데 니가 우는 바람에 내가 완전 눈물바다 됐었거든? 이상한 복수를 하게 되었네.

 

 

 

선물로 바움쿠헨을 받았다. 독일어과 출신이라 바움쿠헨을 준비했나? 나중에 물어봐야지.

손수건도 받았다.

카달로그도 받았다. 여기서 맘에 드는 걸 골라 배송받는 선물 시스템임.

그 날 미용실에서 이렇게 이쁘게 사토상한테 세팅 받고 드레스 입고했던게 너무 아까워서

 

집에와서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드레스업하고 축의금이니(한국의 일반적인 금액의 열배임!) 그런거 하나도 아깝지 않지만 스시녀 김치녀하면서 일본은 되게 검소하고 수수한 것 처럼 알려졌다던데. 멩코와 내가 어이없어하며 한국 기자들은 주위에 일본 사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뭐 듣는 소리 없나. 어뜨케 국제사정을 몰라도 그렇게 모르나 흥분했다. 일본결혼식이 결코 수수하진 않아. 그나마 이쿠는 드레스도 안갈아입었고 (1벌당 기본 1~200만원씩 추가된다나?) 피로연도 생략한 (보통은 식장에서 밥 다 먹고 장소 이동해서 다시 파티를 연다.) 조촐한(!)편이었다. 
 
아무튼, 그건 문화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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