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비자를 발급받자 마자 농사 짓듯이 이력서를 마구 뿌리고 하루에 한 건씩 면접을 걷으러 다녔다.
첫번째 회사는 이전 꽤 유명했던 모 컴퓨터 회사인데 시대의 물결에 휩쓸려 이름을 지우고 서비스업종으로 탈바꿈 한, 아니 이제 할려는 참인 회사였다. 집 앞에서 버스로 한 번에 갈 수 있다는 점과, 11시부터 5시까지 근무한다는 점, 한국어와 일본어를 필요로하는 것과 예전 무역지식을 써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반면 단점으로는..
무역업, 영업보조를 하면서 간간히 경리도 하고, 비품챙기는 일반사무는 할 수 있지만 일본어가 서투른 사장님의 비서 역할에.. 영어로 소통하는 과장과의 불안전한 커뮤니케이션을 통번역해야하는 일과 가끔 관공서일을 처리해 달라는.. (이게 과연 오전 11시부터 5시 땡 하고 끝날 수 있는 역할 분담일까.) 그리고 주4일을 원했지만 조금 힘들어 보였고, 결정적인 것은 직원이 남자 사장님과 남자 과장님. 이렇게 두 분 뿐이라는 것이다. 근데 그 두 분끼리 말이 잘 안 통함....
두번째 면접은 예전부터 관심있었던 일본 쇼핑몰 사업이었다. 좋은 점은 주4일, 동년배 여자들이 아주 많았고 (주부들도) 꽤 장사가 잘 되는 회사라 메뉴얼이며 복지가 잘 되어 있었다. 사무실도 밝고 크고.
단점은 시간이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 저번 회사보다 출근시간이 한 시간 빨랐다. 그리고 집에서 회사까지 전철에 버스까지 갈아타야한다는 점. 쇼핑몰 사업은 좋은데 실제로 하는 일은 오로지 배송일이라 망설여졌다. 또..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인 건 여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세번째 면접도 쇼핑몰 회사였다. 근무시간이 1시부터 6시까지 매우 매력적이었고, 지하철로 10분 환승없이 역에서도 가까웠다. 밝고 깨끗한 사무실에, 배송뿐만아니라 배웠다가 썩을락말락하는 포토샵도 활용할 수 있고, 한국어 사용은 물론이고 일본인 손님 응대 업무도 약간 있어 보여 좋았다. 그리고 비슷한 또래의 여직원이 있다는 점 게다가. 평일날 하루 쉴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더니 OK 해 주어서 주 4일 근무로 낙찰 되었다! 이로서. 마지막 면접의 단점은 없어졌다.
동료 여직원 언니와도 천천히 천천히 신뢰를 쌓고 있다. 예전에는 빨리 동료들과 친해지려고 무리하게 군 적도 있는데 그러다보니 급 사람에게 실망하고 가식을 들키고 했던 일도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잔잔하게 한 직장에 오랫동안 꾸준히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욕심내서 인정받으려 나서고 맘에 들려고 애쓰는 게 없어졌다. 매우 조용하고 차분하고 진중한 사람인 양 구는 나를 발견한다. 이게 오히려 가식의 결정판인가. 다행히 동료 언니도 침착하고 고요한 사람이어서 서로 공기처럼 잘 적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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