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타코벨에 갔다가 발을 밟혔다.... 계산대 앞에 선 여자가 힐을 신고 갑자기 뒷걸음질 친 자리에 내 발이 있었다. 온 체중을 실은 뾰족한 물체가 샌들 밖으로 시원하게 드러난 내 네번째 발가락 가운데에 정통으로 내려닥쳤다. 비명도 못지르고 손으로 허우적 댔다.. 이런 개나리같은..
자기가 생각해도 지금 이 유혈사태가 너무 잔혹했는지 심하게 당황한 여자는 어머 죄송해요.. 하고 후다닥 자기 테이블로 도망을 갔다. 완전 십장생..오래살아라 십장생.... 한국말도 모르는 케군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너무 화가나서 나한테 괜찮냐고 울상만 짓고 있고 타코벨 점원은 날 걱정하는 게 아니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이 뜨아-하는 표정으로 굳어있었다. 주변이 너무 알아주니까 오히려 냉정을 찾은 나는 점잖게 "괜찮...습니다." 하고 더듬더듬 주문을 끝냈다. 아가씨는 비닐 주머니에 얼음을 넣어 주었다.
예전에는 내가 호들갑 떨면 어른스러웠으면 좋겠다고 하더니. 그 날은 너무 어른스러운 나의 색다른 모습을 본 게 대견했는지. 저 사람은 도데체 왜 사과안해? 왜 안해? 이렇게 분해하며 나를 위로했다. "응.. 했어 했어. 그년 아니 그녀는 너무 어렸어. 아마 본인도 많이 당황했을거야."라며 나는 매우 성숙하게 대답했다.
오늘은 본식때 입을 한복 대여하러 가는 날이니까 기분을 바꿔야 한다.
엄마가 건강했을 때 내가 전통 혼례 했으면 좋겠다고 친구분에게 이야기했던 걸 알게 되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식장에 가서 예약했다. 결혼식날은 예약날짜 잡힌 그 날로 잡혔다. 스튜디오 촬영 없음. 신혼여행 생략, 결혼반지 교환으로 우리의 조용한 결혼식 준비는 대충마무리 단계로 넘어왔다. 전통혼례로 결정하고 나니 일본에서 오는 케군의 친지 친구 동료분들 그리고 나의 일본 지인들에게 뜻깊은 볼거리도 제공되고 (장금이 코스프레 보러오세요.라고 초대하곤 한다.) 다들 한국 관광겸 우리 결혼식을 찾는 일에 매우 흥분되어 있는 눈치이다. 그래서 내친김에 사물놀이 옵션도 추가하고 국악 현악기 4중주 라이브 연주도 추가했다! 추가요!
한복을 처음 입어보는 케군의 표정이 개구쟁이처럼 신났다. 입어보라니까 팬티는 어떻게 하냐고 해서 한복 골라주러 지원사격 나온 메텔 어머니랑 한복집 아주머니가 깔깔깔깔 웃었다. 그냥 청바지 위에 입어보란다. 아주머니들이 너도나도 벗고 싶으면 벗어도 된다고 그래서 케군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껏 잘 보살펴 주신 어머니께 인사겸 겸겸 식사대접을 해 드리고 싶었던 나는 두 사람을 데리고 경복궁 한정식을 예약했다. 가는 동안 택시 앞자리에 탄 케군의 뒤통수가 미동도 하지 않길래. "케서방 자는건가?" 하셔서 "아니요. 원래 저래요. 스피드를 즐기고 있을걸요?" 했더니 까르르르 재밌어했다. 케군의 매력.
생갈비 코스
살짝 퓨전한식이어서 한국사람이 가기에도 맛깔난 것 같다. 난 토마토 샐러드와 밥하고 같이 주는 생선국이 가장 맘에 들었다. 케군은 역시 물어보나마나 생갈비가 일등.
그나저나 케군은 한국의 파인애플 주스(슬러쉬와 설탕이 들어간 불량한 맛)에 떡실신해서 "이것 봐. 이거 먹어봤어? 이렇게 맛있는 생과일 주스는... 정말 처음이야..."라고 감탄했다. 색소랑 식초에 절인 김밥천국의 다꽝을 먹을 때와 같은 흥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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