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엔 어머니,아버지,케군의 외할머니,남동생,그리고 동서 >_< (동서라는 말이 새롭고 간질간질!) 와 식사하기로 했다. 어머님의 친구분이 축하해 주고 싶다고 "파티 스시"를 준비해 주셨는데 다들 생전 처음보는 "스시"의 모습에 데체 어떻게 먹는 건지 모르겠다고 멋쩍게 웃어야했다. 너무 배불러서 저 밑의 게살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이꾸라를 잔뜩 먹은 후 밥을 먹고 마구로를 또 클리어하다가 지쳐서 남겨야 했던.. "파티스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아빠랑 꼭 닮은 남동생과 엄마랑 꼭 닮은 케군은 속이 어쩜 이렇게 다른지. 예전에 케군과 단 둘이 난타공연을 보러간 적이 있었다. 케군은 왕자병이 발병하여 VIP에 앉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랬지만 중간쯤 반값에 앉아 보자 우겨 티켓을 끊었다. 그런데 공연 중에 비싼 자리 손님들 손을 끌어 무대로 올렸다. 관객을 참여시키는 모습을 보고 VIP가 아니라 안도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남동생은 당장 VIP석으로 온 가족 티켓을 예매하겠다고 신이 났더라. "그런 맛에 보는 거죠! 가만히 앉아서 보면 무슨 재미예요!"
뇌경색으로 2년간 병원 생활을 하신 할머님은 87세에 일부 마비가 오셨지만 걸어다니실 정도로 건강을 회복하셔서 댁에서 생활하시게 되었다. 딸과 평생을 지내신 어머님은 착한 사위덕에 (케군의 아버님)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대신 외롭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오신 듯 했다. (할머님 인생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타이완에서 트렁크 하나들고 일본어를 배우러 오신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만나 일본에 결혼하고 정착하게 되셨다. 그런데 밤낮으로 과로하신 할아버지는 케군 어머님이 중학교때 부인과 아이 셋을 남겨두고 먼저 돌아가셨다.
식사 도중에 케군의 외삼촌이 와 주셔서 얼굴을 뵜다. 이목구비가 뚜렷하셔서 할아버지가 얼마나 미남이셨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타이완 이름을 아직 갖고 계신 삼촌은 이름에 나랑 같은 한자를 하나 쓰고 계셨다. 가족이 되려는 마음. 가족으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크면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으려고 하는게 사람의 본능일까. 그것만으로도 왜이렇게 가깝게 느껴지던지.
동서네 부부의 결혼 선물
며느리들에게 나눠줄 게 있으시다며 어머님이 꺼내신건 바로 할머님께서 사 주신 30년전 시집올 때 당시의 냄비세트였다. 한번도 안 쓰고 그대로라고 하셨지만 에미와 나는 "30년 전"이라는 말에 후덜덜덜 긴장하고 있었다.(ㅋㅋ)
아니 그런데 이건 보기에도 멀쩡하고 튼튼한 스텐제품이 아닌가. 나중에 알았지만 스텐 조리기구의 역사를 함께 해 오며 전 세계 주부들의 사랑을 받아 온 녀석이었다. 큰 냄비 작은 냄비 반 반씩 동서와 사이좋게 나눠가졌다. 집에가서 메이커의 요리집을 펴 보았는데 글쎄.
쇼와 54년 출판. 케군과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 진 책이었다.
2024년의 목소리
아직도 어머님이 주신 스텐 냄비 쓰고 있다. 밥 할 때 제일 많이 쓴다. 갑자기 너무 냄비가 사랑스럽게 느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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