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이는 2년 전 엄마병원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다. 나는 일본-한국-일본으로 터전을 옮겼고, 홍이는 그동안 시드니에서 생활하다가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오사카에서 환승하는 틈을 타 우리는 교토에서 만나기로했다. 이책 저책 보지 말고 진보쵸에서 우연히 산 가이드 책에 나온대로 가고 나온대로 먹고 나온대로 자자는 게 이번 여행
홍이는 아침일찍 케언즈에서 출발했고 나는 심사숙고해서 벤또를 골라 늦은 오후 도쿄역에서 출발했다. 밤 10시 교토 공항버스 터미널에서 드디어 홍이를 만나고 가이드책에 나와있던 게스트하우스에 갔다. 낡고 지저분했지만 더럽게 쌌다. 더럽고 싼건가? 하지만 호텔엔 그게 없었으니까.. 그게... 메텔네 회사 과장님이 말한 그거. OT장소 정하는데 콘도보단 펜션이라며, 콘도엔... 모든게 다 있는데 정이 없단다. ㅋ
그나마 개별실을 이용해서 이 정도이다. 이불 상태를 보고 홍이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고 ㅎㅎ. 옆 방은 개미굴처럼 이층침대가 가득 한 곳에 20명씩 (남여혼용)자고 있었다. 1박 2000엔쯤 했다. 3000엔인가.좋은 점은 바로 앞에 목욕탕이 있어서 노천온천도 하고 작은 동네라 여기 사는 느낌도 나고 게스트 하우스라 그런지 너나 할거없이 관심가져주고 말걸고 같이 마시고 먹고. 역시 이 곳엔 정이 있었다.
아침밥. 뭐니뭐니해도 징그럽게 이야기하지만 밥에도 정이 ㅋㅋㅋ 우린 특별히 가고싶은 곳이 없어서 키요미즈테라로 향했다. 매우 심하게 수다를 떨다 정신을 차려보니 도착해 있었다. 가이드 북에 나와있던 찻집에 들러 커피와 홍차를 테이크아웃하고
아침부터 강렬히 느낀 건데 교토엔 물이 특별한 것 같아. 머리결이 찰랑찰랑 보드랍고 묵은 퍼머끼가 몽글몽글 올라와서 풍성하게 스타일링 되는 느낌. 피부도 정말 보드라와졌다. 홍이는 우리가 추운데서 자서 모공이 계속 쪼그라든 상태여서라고 우겼지만 ㅋ 아 정말 게스트하우스의 첫 날밤엔 입 돌아갈 뻔했다.
걷다보니 근처에 또 비슷한 게스트하우스를 발견했다. 내 체력이 허락한다면;;; 다시 누추한 여행 오고싶다. 이런 것도 다 젊을 때 하는 거라고 하루하루 변하는 내 몸이 말해주고 있어..'ㅂ';;;;
브레이크 타임에 걸려서 음식점을 찾아 해메다가 결국 소바집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런치를 먹었어야 했는데!!! 기온에 오면 오색의 간자시를 늘어뜨린 마이꼬, 게이샤 언니들이 단체로 돌아다니고 있을 줄 알았다. 이거슨, 한국에 가면 빅뱅과 소녀시대가 걸어다니고 있는 줄 아는 거랑 다르지 않는걸까.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와서 홍이가 호주에서 사 온 와인을 수다와 함께 마셨다. 그러다가 아침 식사할 때 옆에 앉아있던 교토 아저씨가 오늘 저녁7시에 라이브가 있는데 놀러오세요. -라던 말을 잊지 않고 가게에 찾아가 봤다.
근데, 얘네들 그냥 이야기할 땐 너무 착하고 재밌고 멀쩡해 ㅋ 함께 이야기할때 마구 재밌게 웃고 놀다가 노래만 시작하면 우린 4차원에 적응이 안 돼서 이 시트콤 같은 시츄에이션에 웃음을 참느라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래도 우리가 '나게센' (공연료를 마음대로 던져주는 방식) 제일 많이 내고 왔다. 녀석들 귀엽게도 엄청 진지했는데. 우리에겐 참 즐거운 추억이 됐다. 진짜 예술을 무시하려면 얼마든지 예술에 열광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서 오타쿠 클럽에서 있었던 일을 일하는 베이비들(20살 22살)에게 이야기해 줬다. 홍이는 2년간의 시드니 워킹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터닝 포인트였으니 얼마나 마음이 쓸쓸하고 외롭고 허 할까.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영어로 타국인과 이렇게 소통하는 기쁨을 한국에 가면 당분간 잊고 살아야 할 테니. 내가 일본 워킹을 끝내고 일주일을 울었던 것처럼 홍이도 지금 한 구석이 울고 있는 걸 안다. 되도록이면 쉴 틈없이 헤프닝을 이어가 신나는 마무리를 해 주고 싶었다.
약 오년 만에 다시 찾은 오사카. 전엔 없었던 H&M때문인가 오사카 전체가 변한 것 마냥 생소했다.
성실한 메뉴 번역. '사계절생선회 모임' 빵 터졌다.
쌍문동 부녀회 모임이냐고
예전에 딱 한 번 가본 뒷 골목 숨은 오코노미야끼집. 사람 뇌가 참 대단하다. 어쩜 이걸 기억하는지.
홍이가 카츠오부시가 싫다해서 빼 달라했더니 어째. 발가벗은 것 같아ㅋㅋㅋㅋㅋㅋㅋ 매우 부끄러웠다. 추...춥지.. 어서 먹어줄게.
강 근처를 거닐다가 츠요시가 일하는 오키나와풍 이자카야에 갔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실컷 오키나와 음악을 듣고 왔는데 오사카에선 라이브로 연주하는 걸 듣고 나니 이제 그만~ 오키나와는 이제그만 ㅋㅋㅋ 츠요시를 처음 만난 건 23살 한국에서였는데 그 때 함께 했던게 홍이였다. 그러니까 우린 9년만에 다시 뭉친 것이다. 각자 9년동안 제2 외국어를 배웠다. ( 츠요시는 다음달 미국으로 떠나기로 한 상태였다.) 정말 많은 세월이 흘렀다. 19살이었던 츠요시는 28이 23이었던 나는 32이 22이었던 홍이는 31이 되었다.
요시네 가게에서 카라아게랑 사시미 먹었는데도 우린 너무 수다를 많이 떨어서 금방 금방 에너지가 떨어졌다. 라면 한 그릇씩 뚝딱 비우고 츠요시가 알바할때 자주 가서 친해 진 바에 놀러갔다. 오랜만에 만난 후지타 마스터는 나이가 들어도 절대 물러서는 법 없는 카리스마가 그대로였다. 오사카의 마지막 밤을 수다수다수다로 꽃 피우고 주둥이가 지칠대로 지쳤다.
비지니스 호텔에서 아침 일찍 홍이를 공항으로 보냈다. 어차피 곧 아니 평생 만날 거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인사햇지만 둘다 훌쩍훌쩍 콧 잔등을 시벌겋게 물들였다.
사랑하는 내 친구. 내 동생. 또 만나는 날까지..
그나저나 홍이가 호주에서 사 온 양털 카펫은 어디 둘까 고민하다가 쇼파에 깔아봤는데 등짝부터 엉뎅이까지 불난듯 너무 따뜻했다.
2024년의 목소리: 저렇게 큰 걸 비행기 갈아타고 전철 갈아타면서 싸오다니... ㅠㅠ 그리고 나 너랑 같이 또 드럽고 싼 게스트 하우스에서 자고 싶다. ;ㅂ;
'여행하던 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12-30 미국에서 온 여행 고수 (0) | 2024.11.20 |
---|---|
2012-12-06 반나절 가마쿠라 여행 (0) | 2024.11.18 |
2012-09-27 쿠사츠 싱콩옹셍 (0) | 2024.11.14 |
2012-06-18 [효자동] 소금구이 (0) | 2024.09.26 |
2012-06-13 강화 나들길 (0) | 2024.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