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츠코는 1923년 오키나와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에서 언니와 미츠코 자매는 정규교육을 받으며 평화로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동그랗고 큰 눈매와 또렸한 코 다무진 입매에 지금 보아도 세련된 얼굴을 한 당차고 활달한 여자아이였다. 선생님의 부탁으로 모델을 선 그림이 어딘가에 수상한 적도 있었고 이웃나라 조선에서 순회공연을 온 무용가의 공연을 마을극장에서 구경하기도 했다. (미츠코는 80년전의 그 무용수의 이름을 기억했다. 한국 현대무용의 선구자 20세기를 빛낸 역사적 인물 최승희였다.) 친구도 많았고 세상은 평화로웠고 기회는 넘쳤다.
교사가 되기 위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여자였지만 미츠코의 부모는 학업에 대한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전문교육을 마치고 실습과정으로 1년간 교생기간을 보내기 위해 같은 과정을 배우는 언니와 함께 대만에 건너갔다. 일본은 차례로 주변 아시아 국가를 침략 중이었고 조선을 비롯한 대만 등은 일본령이었다. 미츠코는 소학교 3학년 학급의 담임을 맡았다. 일본어로 생활지도를 하고 일본어로 교과 과정을 가르쳤다. 아이들은 항상 에너지 넘치는 미츠코를 잘 따랐다.
실습이 끝나고 정식교사가 되었지만 늘 윤리적이고 솔선해야하는 규범적 생활과 본래의 성격간에 갈등이 일었다. 답답함을 느낀 미츠코는 교사로서의 미래를 그릴 수가 없었다. 미츠코와는 달리 가르치는데에 큰 보람을 느끼는 언니는 교사로 남았다. 미츠코는 다른 길을 가기로 결정하고 친구가 있는 만주로 향했다. 만주도 국경없는 일본령이었다. 친구와 함께 만주 항공에 취직을 했다. '에어걸'이라는 직업으로 불리웠다. 서양풍의 제복을 입고 짧은 머리에 퍼머도 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모던걸이었다. 프로펠러가 두개 돌아가는, 지금의 여객기보다 훨씬 작은 규모였지만 그래도 정원을 채우면 20명 정도 탑승할 수 있었다. 하늘을 나는 사람은 흔하지 않았다. 여자가 비행기를 타는 직업으론 에어 걸이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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