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하던 나

2009-09-29 넷째날 타이완고사관

by Previous Dong히 2023. 11. 15.

마지막 날은 12시에 소집해서 면세점에 들렀다가 공항으로 이동하는 예정 뿐이었다. 여행내내 일찍 일찍 일어나서 움직인 우리는 습관처럼 7시에 일어나 마지막 조식을 만끽하고 밖으로 나왔다. 호텔 바로 옆에 있는 '타이완고사관'을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앗 이런 10시반에 개장이라니. 하는 수 없이 타이페이 역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타이페이 역 주변은 우리나라로 치면 글쎄요. 종로나 강남정도의 느낌이랄까. 왜냐면, 어학원과 입시학원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에 파는 음식들도 싸고 젊다(?) 분식집 분위기의 음식점이랑 유명한 타피오카 체인점이 있었다. 매일 같이 먹었던 밀크티 타피오카중에 가장 최고로 맛있는 가게가 바로 호텔 옆에 있었다.

타이완고사관과 이어져있던 쇼핑몰이 30분 일찍 개점했다. 뭔가 잘 나가는 쇼핑몰인 모양인데 구성은... 무지루시,다이소,한층 전체에 일본 화장품 코너, 거대한 건담이 눈길을 끄는 반다이, 페퍼런치,요시노야, 그 밖의 일식 돈까스집.끝. ㅠㅠ  (저...타이완에 왔는데요..ㅠㅠ) 거의 우상화 되가고 있는 타이완 속 made in japan을 재확인 한 기분이었다. 쇼핑몰 안에서 케이타는 완전 우쭐대마왕이 되고 말았다. 너 임마 네 친할아부지가 타이완 사람인걸 잊지말라구!

10시반 땡 치자마자, 타이완고사관에 입장했다. 여긴, 오오사카의 극락상점가 처럼 만들어진 건물이다. 60년대의 타이완을 재현해 놓은 테마파크틱 시설로 기냥 레트로~하다.

난 [모던 경성]이옛날 부터 너무 좋았다. 그 당시의 장난감 같은 안경,세련된 중절모,끔찍히 신경쓴 불편해 보이는 수트, 영화같은 여성들의 컷트헤어, 긴장된 허리라인. 한국드라마 [경성스캔들]과 일본영화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의 모습들. 타이완에도 일본에도 있었다. 모던의 냄새. 일제치하에 있는 나라들에게 좀 일찍 모던을 가져다 준건 사실이지만 가만둬도 왔을 것이다 그 시대는.. 그래서 사실 마냥 좋아하기 좀 캥기는 취향이기도 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호텔 로비에 느긋히 앉아 가이드 아줌마를 기다렸다. 이제 면세점에가서 놀아야지.

타이페이에도 시내 Duty free shop이 있다.한국 신라면세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나는 당연히 스케쥴 마지막에 인솔당할 면세점은 그 시내면세점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쇠뿔도 단김에 뺄 거 같은 억척스런 아줌마 가이드를 보고나서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 나는 '그 업계'에 손을 댄 경험이 있으면서도 왜 진작 예상하지 못했던가.

오사카에서 워킹홀리데이로 1년을 보낼때 나는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일본상품을 판매하는 시내의 작은 면세점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일본어가 서투른 외국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식당에서 가끔 무시당하며 노동하거나 이자카야에서 가끔 무시당하며 아침까지 일하거나 둘중에 하나인데 그 면세점은 한국 오너에 손님도 한국인에 게다가 낮에 일한다는 장점을 갖춘 운좋은 직장이었다.9시에 출근해서 5시-7시 사이에 퇴근하고 한달에 20만엔 가까이 두둑히 챙겨갔다. 그리고 저녁때 일본인과 교유관계를 돈독히 한 덕분에 난 일본어도 늘고 친구도 많을수 있었다. 나에겐 더 없는 직장이었으나, 여행사를 통해서 뭣모르고 인솔당해 온 한국 관광객들에겐 본의아니게 선택의 여지없는 물건을 사라고 사라고 들이대 좀 죄책감도 들었다. 결코 성능이나 가격이 나쁘지 않았지만 한정된 장소에서 한정된 상품만 늘어놓은게 뭐랄까..

아니나 다를까. 우릴 태운 버스는 고가도로 밑에 퐝당한 장소로 모두를 인도했다. 지하 1층과 1층으로 구성된 빛 바랜 넓직한 가게 안에 이것저것 많았다. 파인애플케잌부터 산호 쥬얼리 타이완 명란. 일본 아줌마 아저씨들 뭔가 신나게 사재끼시는 분위기에 케이타도 슬쩍 나한테 이거 하나만 사 갈까? 한다. 내가 눈을 부릅뜨고 째려봤다. 케이타가 힉. 하고 물건을 내려놨다.

가게를 나와서 길을 건넜다.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셨다. 오사카의 경험과 신라면세점에서의 경험을 통틀어 내가 공항 면세점에 가는게 200퍼센트 현명한 처사라고 케이타를 잘 구슬렸다. 이 바보 나 없었으면 미심쩍은 가게에서 잔뜩사고 공항가서 얼마나 땅을 치고 후회했을꼬.

공항에 도착해 모든 수속을 마치고도 1시간 30분이나 남았다. 타이완 공항.. 조오타... ㅠㅠ 한국만큼 싸다. 작년 한국에서 구입한 입셍로랑 파우더를 거의 비슷한 가격에 구매했다. 일본에선 면세점인데도 두배가 비쌌는데.
선물용 식품들도 깔끔한 상품구성에 세련된 패키지에  훨씬 맛있다! 나는 망고 푸딩을 샀고 케이타는 파인애플 케잌과 부모님 드릴 타이완 명란을 샀다. 아까 들린 미심쩍인 면세점에서 왠 시장봉다리에 물건 담아주던 광경과 180도 다르다. 정성들인 포장과 예의바른 직원들 고급스런 쇼핑백. 상품 볼륨에 비하면 가격도 싼거다.

기가 센 여자친구 덕분에 케이타는 또 덕을 보시고.
나한테 고맙다고 백번 해-라고 했더니,
내가 고른 여자다! - 이렇게 버르장머리 없이 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