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사에 도착해서 싸웠다. 아아아아아아........... 케이타가 카메라를 꺼내들자 렌즈가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은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멈춰있고, 에러가 발생했습니다. 라는 메세지를 표시했다. 아까 카페에서 내가 한번 떨어뜨렸는데 그것때문에 고장났다고 몰아세웠다. 높이 50센티도 안되는 소파위에서 아래로 떨어진 일본제 디지털 카메라는 그렇게 쉽게 망가졌다.
믿기 힘들지만 뭐, 그런 상황이 됬다. 내가 떨어뜨렸던건 사실이니 난 미안하다고 무조건 사과했다. 하지만 여행 둘쨋날에 카메라를 못쓰게 된 케이타의 기분은 실망감과 억울함에 엉망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끝내 "너의 그 급하고 조심성없는 한국기질이 정말 싫어." 라는 말을 뱉어내서 내 기분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뚝. 하고 뭐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이후 우리의 대화는 단절됬고,난 미안하기는 커녕 너무 분해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물건 떨어뜨려서 고장내는건 전세계에 한국사람 뿐이고, 한국에 가면 다들 물건을 집어 던지고 난폭하게 굴고 새치기는 으례하고 밥먹듯이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구는 사파리 정글같은 사회다. 그리고 니네는 전세계에서 제일 깔끔하고 매너좋고 예의바르고 배려심 깊고 항상 신중한 왕 신사들이다. 니네는 문화인이고 우린 완전 식인종이다. 너 잘났다. 너 잘났다. 씨..ㅂ 너 진짜 잘났다.
그래서 용산사는 요거 딱 한장 ㅠㅠ
엑시무스로 찍었다. 필름이 딱 한장 남아있었다.
스린에 도착하니 Y언니가 마중 나와있었다. 오사카에서 만난 언니는 약 1년동안 거의 매일 만나는 사이였다. 타이완사람인 지금의 남편분을 만나 (6년가량의 원거리 연애를 통해)결혼을 해서 지금은 타이페이시에서 신혼생활을 하고있다. 이런 어색한 우리 사이에 다른 사람이 와 주는게 얼마나 구세주와도 같았는지 ㅠㅠ
역에서 언니를 보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언니...나 오늘 완전 운이 나빠.. 이러면서 눈물이 질질 났다. 언니는 너무 당황해서 왜그래 왜그래.. 하고 토닥이고 케이타는 지 때매 우는 지도 모르고 우리가 너무 오랫만에 상봉해서 기뻐서 우는줄 착각하는 눈치였다. 암튼, 내가 만나자마자 놀래키는 바람에 언니를 너무 신경쓰이게 만들어서 두고두고 얼마나 맘이 안 좋았는지 모른다..
그건 그렇고, 스린은 재밌었다. 언니랑 언니 남편분이랑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면서 또 앞의 일은 잊어버렸다. 언니가 언니 카메라로 사진도 찍어주고 나중에 메일로 보내주었다. 선지 들어간 김치찌개가 (타이완 돈)100원이었다.
나하고 눈도 안마주치려고 했던 케이타가 거대한 치킨을 들자마자 환하게 웃었고, 나도 케이타랑 손도 안 스치려고 기를 쓰다가 스킨 푸드가 보이자 마자 베시시 웃었다. 스킨푸드를 좋아하는 케이타가 내 손을 잡고 저기! 저기 가자!~ 해서 넷이서 함께 들어갔다. 케이타가 한국에 갔을때 남성용 두피 케어 한방 에센스 같은걸 사와서 아주 좋아했었는데 나보고 여기도 그거 없을까? 물어와서 그럼 우리 물어볼까? 하고 언니를 불렀다. 스린에선 일본어가 안 통했다. 언니 남편분이 타이완 분이시니까 오빠에게 부탁드렸다.
"대머리 방지하는 로션있는지 좀 물어봐 주세요."
우린 말해 놓고 웃겨서 뒤로 물러났고 오빠는 스킨푸드 언니에게 중국어로
"대머리 방지하는 로션 있나요?"
물어보고 정확히 1초후에 모두 푸하하하하하하하 하고 웃었다.
온몸에 피곤이 몰려와 언니와 애석한 작별을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계속 신경쓰이던 카메라를 충전기에 꽂자마자, 렌즈가 지---잉 하고 들어갔다.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 있던 케이타를 향해 소리쳤다.
야!! 방전되서 그런거잖아!! 너 죽을래????
물소리가 들린 후 케이타가 쑥쓰러운 얼굴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아이쿠야~ 그랬구나 다행이네 다행이야. 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보통 사과로는 풀릴일이 아니란걸 심각하게 알려주고는 우린 진지하게 마주앉았다.
케이타는 큰 상처를 안겨준 것에 대해 반성한다는 말.
앞으로는 무슨일이 있어도 그런 실언을 하지 않겠다는 말.
자신도 너무 큰 실망감에 그랬던 것이지 실제로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
그의 표정에서 그런 발언을 했단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읽었다.
그래. 너도 인간인데 우린 모두 실수를 하는 법인데...
나도 니가 '일본인'이라서 경멸하는 것이 수 없이 있는 것 처럼
너도 '한국'과 '나'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젠 아무리 끔찍한 일을 서로에게 저질러도 용서할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놀라웠던 경험이기도 했다.
'여행하던 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09-29 넷째날 타이완고사관 (0) | 2023.11.15 |
---|---|
2009-09-25 셋째날 맛사지,극품헌,원주민박물관,담수 (0) | 2023.11.13 |
2009-9-21 둘째날 영강가 (0) | 2023.11.12 |
2009-09-16 둘째날 지우펀 (0) | 2023.11.12 |
2009-09-14 친일파 타이완 여행 시작 ; 첫날 101빌딩 타이페이의 밤 (0) | 2023.11.12 |